커피에 관한 짧은 이야기

강미애 수필가 | 기사입력 2020/02/12 [10:42]

커피에 관한 짧은 이야기

강미애 수필가 | 입력 : 2020/02/12 [10:42]

▲ 강미애 수필가    

커피에 관한 짧은 이야기

 

 소통이란 마음을 열고 상대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사람의 마음을 향해 다가가는 것이지요.

 

물론 마음을 여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따뜻한 커피 한 잔과 시작하면 어떨까요.


 7순이 넘은 친정아버지와 여행을 떠났습니다. 병환으로 오래 고생하셨는데, 병실에서 문득 바다가 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평소에 워낙 과묵한 분이라 맏딸인 제게도 속 깊은 이야기를 잘 안 하시는 편인데, 그날은 웬일인지 여행을 가고 싶다고

하셨지요.


 우리 형제는 2남 2녀입니다. 그 중 저는 장녀이고 아버지와 모습도 성격도 참 많이 닮았습니다. 범띠 부녀. 무뚝뚝하고 말 없는 아버지와 매사에 시니컬한 맏딸입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저는 유난히 갈등이 많았습니다. 돌아가신 친정어머니의 말로는 불같은 성격에 무뚝뚝하고 융통성 없기는 둘이 똑같다고 했습니다.

고집은 또 얼마나 센지, 어쩌다 아버지와 의견 충돌이 생기면 자존심에 한 달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지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철이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어쩌면 서로 너무 닮아서, 남에게 보이기 싫은 내 모습을 그대로 보는 것 같아 더욱 외면하려고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시고 20여 년, 홀로 계신 아버지와 소주 한 잔 기울일 때도 우리는 별로 말이 없습니다. 서로에게 화가 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아마도 마음속 이야기를 꺼내는 일이 여전히 우리 부녀에게는 힘든 모양입니다. 그렇다 보니 둘만의 여행은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었습니다. 여행 내내 다투면 어쩌나, 바다도 보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시겠다고 하면 어떡하지 하며 노심초사했습니다.

 

부녀지간은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낯선 얼굴을 숨길 수 없는 관계이니 말입니다.

그래도 처음으로 둘 만의 여행을 부탁하셨는데 거절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봄볕이 환한 어느 날, 드디어 아버지와 함께 바다를 향해 출발합니다.

평소에 드시던 약을 나누고, 따뜻한 옷 몇 벌 그리고 보온병도 잊지 않고 챙겼습니다.

이것저것 짐을 정리하는 나를, 아버지는 물끄러미 바라볼 뿐 아무런 말씀이 없습니다.

혹시 비상 상황이 발생할지 몰라 담당 주치의와 병원 연락처를 적은 메모도 가방에 잘 넣었습니다.

사실 의사선생님께서 장거리 여행은 이르다면서 아버지의 여행을 만류하셨거든요. 하지만 아버지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가고 떠나고 날아가는, 움직이는 모든 것에 마음을 얹어 바다를 향해 떠났습니다.

고속도로를 시원하게 달립니다. 나는 묵묵히 운전대만 잡은 채 앞만 바라볼 뿐입니다.

역시 우리 부녀의 대화는 쉽게 시작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참 동안을 창밖만 바라보던 아버지가 문득 나를 불렀습니다.


 큰딸, 커피 한잔 할까….


 아버지와 함께 하는 여행. 이 여행이 주는 선물은 아버지라는 존재의 재발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서로에게 마음을 여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려운 일도 아닌 것 같습니다. 진심을 담은 커피 한 잔이라면 말입니다.


 아버지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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